유학을 결정했을 때,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서양인 미술가 친구가 물었다. 서울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곳을 떠나 왜 유럽까지 디자인을 공부하러 가느냐고. 그때도 지금도, 필자는 보기 좋은 형태만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디자인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학교를 알아보던 중, 드룩(droog)디자인에 매료돼 알게 된 디자인아카데미아인트호벤. 이 학교의 성공을 이끈 하이스 바커(Gijs Bakker)는 레니 라마커스(Renny Ramakers)와 함께 네덜란드 디자인 그룹 드룩의 창설자이다. 1993년 시작된 이 그룹은 실험적인 디자인을 표방하며 당시 새로운 해석의 일상용품들을 선보였다.
[아르누트 비세, 에릭 얀 콱겔의 드룩을 위한 작업]
예를 들어 유르겐 베이(Jurgen Bey, www.jurgenbey.nl)의 나무기둥 벤치의 경우(Tree trunk bench, 1999) 일반적인 의자제작 과정이 생략된 대신, 의자의 기본적 구조와 존재 이유를 보여주며, 일종의 예술작품처럼 보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업이다. 이처럼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과는 달리 신선함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바라보는 네덜란드 디자인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네덜란드의 디자인은 목수의 작업과정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일단 만들고 보는 스타일.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것이 이곳의 작업 방식이다.
디자이너 딕 반 호프(Dick van hoff)의 경우, 이런 목수의 작업방식을 장점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은 기능에 충실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생각이 물건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짧은 만큼, 물건은 있지만 그 물건을 둘러싼 사용자의 삶은 찾아볼 수 없는 작업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딕 반 호프]
이런 공허함을 느끼는 와중에 얼마 전 학교에서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베르토 메다(Alberto meda)의 워크숍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공학도 출신의 디자이너로 “시적인 기술자(Poetic Engineering)”로 불리며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지금은 물이 부족한 나라를 위해 태양광선에 의해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물병 개발에 한창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디자인계의 꽃이었지만 지금은 신선할 것 없는 오래된 전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에토르 소사(Ettore sottsass),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엔조 마리(Enzo Mari) 등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들을 바라보면서 배우는 점은, 그들의 작업 이면에 숨어있는 힘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학까지 아우르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성찰하는 작가로서의 큰 힘을 느낀다.
[에토르 소사]
디자인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친구 하나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우리나라에는 자신의 이론을 갖고 작업하는 디자이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도전해보라고. 어려워도, 시간이 걸려도, 자신의 생각을 키워가며 일상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점점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류지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졸업 IDAS 제품디자인 1학년 휴학,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 Man & Humanity Master 프로그램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