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마시다 자신도 모르게 초록색 병 뒷면의 레이블 디자인을 주시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직업병이다. 술이나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같은 맥주를 마시더라도 담는 글라스에 따라 그 시원함이 다르게 느껴지는 걸 어찌 하겠는가. 이렇듯 미각과 시각의 관계는 음미할수록 오묘하다.
Schiller's Liquor Bar
뉴욕에서 이 오묘함을 잘 소화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Mucca Design의 마테오(Matteo)를 빼놓을 수 없다. Mucca의 작품 중에서 특히 ‘Schiller's Liquor Bar’는 이미 많은 상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다. 하얀 타일 건물에 레트로(retro)하면서도 모던하게 그려진 Schiller's 간판은 매장이 위치한 Lower East Side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또, 옛날 노트북에 남색 잉크펜으로 쓰인 듯한 메뉴판과 요즘 좀처럼 보기 어려운 담배 스탠드가 분위기를 더하는 바가 인상적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놓은 와인 메뉴인데, 1. Cheap($6), 2. Decent($7), 3. Good($8) 라고 되어 있다. 솔직한 것인지 발칙한 것인지. 여하튼 마테오의 디자인을 저렴한 가격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보드카와 타이포그래피를 좋아한다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소호의 ‘Pravda’. 보드카 테이스팅 메뉴는 처음 방문한다면 꼭 마셔 봐야 한다. 몸에 온기가 돌면, 벽에 그려진 굵고 긴 고딕체를 감상하면 되는데, 만약 사람이 꽉 차서 둘러보기 어렵다면 실망하지 말고 메뉴판을 천천히 공부하자. 러시아의 전쟁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이 타입 페이스는 Mucca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커스텀 디자인한 글씨체이다. 이렇듯 바 하나를 위해 쏟는 애정과 노력이 남다르다.
재미있는 콘셉트의 브런치 장소도 한 곳 소개하겠다. 인테리어는 60~70년대 다이닝을 모던하게 구현한 듯 하고, 심플하면서도 섬세한 아메리칸 쿠진(American cuisine)을 표방하는 ‘Public’. 이곳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레스토랑의 주인‘들’인데, 이들을 소개하려면, 먼저 AvroKO라는 디자인 회사 이야기를 해야 한다. AvroKO는 레스토랑과 호텔 등을 가지고 있는 콘셉트 디자인 회사로, 네 명의 파트너가 각각의 특별한 관점으로 디자인 미션을 풀어나간다. 음식, 인테리어, 플래이팅,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그래픽까지. 이 모든 요소의 중요성과 조화를 아는 사람들이다. ‘Public’은 그들이 내놓은 첫 개인 프로젝트이고, 인테리어와 그래픽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Public / Schiller's Liquor Bar의 메뉴판
신경을 썼다고 다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첼시에 있는 고급 맥도날드는 ‘Urban Redesign’이란 테마로 패스트푸드점을 라운지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는 불량 식품을 고급 차이나에 넣어 놓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 식으로 부가가치만 올리려 하기보단, 그에 맞는 담백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얘기를 하다 보니 먹는 것 갖고 너무 따지는 거 아니냐는 항의가 들려온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며 먹는 음식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최고이겠지만, 이렇게 ‘소소한 디자인 안주’를 하나씩 발견하는 것도 그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글 박설미 Opto Design 디자이너 School of Visual Arts, BFA 졸업
2010 월간 웹 2월호 worldreport-written by 박설미 edited by websmedia 저작권자 ⓒ 웹스미디어 컴퍼니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