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년 전쯤 현재 중앙일보 고문인 이어령 선생님을 취재차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얼마 전 영화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통상적인 사례로 볼 때 직업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동종업계 선배인 양촌리 김 회장 댁 둘째 아드님에게 주례를 맡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이어령 선생님이 굳건히 서계셔 반갑더군요. 선생님은 故 이규태(조선일보 논설위원) 선생님과 함께 한국학 쌍두마차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성적으로 메말라가는 이 시대 우리에게 촉촉한 아날로그의 단비를 내려주는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제게 “디지털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가지 문화·문명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의 필요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습니다. 또 “지금 디지털 문화로 인해 우리는 행복한가?”라고 되물으며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된 우리나라를 왜 미국과 일본 등이 예의주시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며 절 긴장시켰습니다. 순간 우리나라 네티즌이 마치 거대한 실험실의 쥐 같은 형국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달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 세상의 중요성을 예로 들며 ‘어금니로 씹어 먹는 디지털 세상’을 구현해야한다고 덧붙였죠. 그러면서 애플(베어 먹는 사과) 컴퓨터, 스팸(통조림) 메일, 카페(찻집)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각’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인간의 감각을 구현하는 과정 중 종착점이 바로 미각인거죠. 오감 중 제일 구현하기 쉬운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순입니다. 선생님의 저서인 디지로그(생각의 나무)를 봐도 미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이 순간에도 디지로그로 대박 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누가 있을까요? 바로 스티브 잡스죠. 요즘 열풍인 아이패드(iPad)를 봐도 어떻습니까? 실제 종이책을 연상한 만큼 뛰어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여주지 않나요? 우리의 차가운 디지털 감성을 다스려주는 따스한 아날로그 감성은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MSN 메신저에 추가된 ‘잉크’ 대화 가능은 어떤가요? 셔터 소리와 수동 기능을 갖춘 디지털 카메라 R-1은 어떻고요. 또 전자펜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릴 수 있는 테블릿과 살아있는 디지털 백과사전 네이버 지식 in, 한국인 고유의 사이 문화에 문화 마인드를 입힌 싸이월드, 아이팟(iPod)과 아이튠즈(i-Tunes)로 세계를 제패한 애플의 MP3 전략도 빼놓을 수 없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말한 이유는 요즘 들어 디지털 버블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사는 학생들을 봐도 걱정이고, 갈수록 대화는 단절되고, 메신저로 대충 해결하고, 우체통은 고지서만 쌓여 가는데 과감히 반기를 들고 싶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 원인으로 ‘아날로그와의 단절’을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월간 w.e.b. 편집국은 가급적이면 회의실이나 커피숍에서 미팅을 하려고 합니다. 또 직접보고 말하다보면 아이디어가 툭하고 튀어나올 수가 있으니까요. 혹시 제가 돌아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죠?
2010 월간 웹 6월호 editor's note written by 김관식 편집장 edited by websmedia 저작권자 ⓒ 웹스미디어 컴퍼니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