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존재하는 수백만 개의 전시회와 갤러리는 각각 다른 테마를 지닌다. 그 중에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헤이워드 갤러리(The Hayward Gallery)’는 매번 독특한 전시로 관람객들에게 재미 요소를 준다.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 속에 참여할 수 있어서, 보는 즐거움과 함께 즐기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전시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08년 5월 28일부터 8월 23까지 약 3개월 동안 열렸던‘헤이워드 갤러리 40주년 기념전시‘싸이코 빌딩(Psycho Buildings)’전시였다. 설치미술을 파격적으로 전시해 놓은 이 전시회는 국내 설치미술가 서도호를 비롯해 거대토끼로 한국에 소개되었던 오스트리아의 창작 그룹 젤리틴(Gelitin)을 포함한 총 10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갤러리를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은 작품은 갤러리 옥상에 설치된 창작그룹 젤리틴의 간이 보트였다. 사우스뱅크(South Bank) 안의 수많은 건물 사이에서 옥상 위에 꾸며진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무제, 자유롭게 나아가기’라는 제목으로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런던의 풍경 속에 기이하지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아르헨티나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천문대’라는 작품은 투명한 돔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누워 있거나 엎드려있는 형태를 돔 아래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하여, 신기한 광경을 선사했다.
입구에 배치된 국내 작가 서도호의 작품‘유성1/5’은 섬세한 표현력과 더불어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를 표현하며 많은 외국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0월 7일부터 현재까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루마니아 빅터맨(Victor Man)의‘If Mind Were All There Was’전시가 무료로 열리고 있다. 17세기 그라피티를 전시하는 이 전시회는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그라피티의 기원을 보여주며, 좋은 귀감이 되는 전시다. 이렇게 헤이워드는 항상 독특한 전시를 보여준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영국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고 파격적인 전시를 보고 싶다면, 헤이워드 갤러리에 들러보기 바란다.
유학을 결정했을 때,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서양인 미술가 친구가 물었다. 서울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곳을 떠나 왜 유럽까지 디자인을 공부하러 가느냐고. 그때도 지금도, 필자는 보기 좋은 형태만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디자인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학교를 알아보던 중, 드룩(droog)디자인에 매료돼 알게 된 디자인아카데미아인트호벤. 이 학교의 성공을 이끈 하이스 바커(Gijs Bakker)는 레니 라마커스(Renny Ramakers)와 함께 네덜란드 디자인 그룹 드룩의 창설자이다. 1993년 시작된 이 그룹은 실험적인 디자인을 표방하며 당시 새로운 해석의 일상용품들을 선보였다.
[아르누트 비세, 에릭 얀 콱겔의 드룩을 위한 작업]
예를 들어 유르겐 베이(Jurgen Bey, www.jurgenbey.nl)의 나무기둥 벤치의 경우(Tree trunk bench, 1999) 일반적인 의자제작 과정이 생략된 대신, 의자의 기본적 구조와 존재 이유를 보여주며, 일종의 예술작품처럼 보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업이다. 이처럼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과는 달리 신선함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바라보는 네덜란드 디자인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네덜란드의 디자인은 목수의 작업과정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일단 만들고 보는 스타일.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것이 이곳의 작업 방식이다.
디자이너 딕 반 호프(Dick van hoff)의 경우, 이런 목수의 작업방식을 장점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은 기능에 충실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생각이 물건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짧은 만큼, 물건은 있지만 그 물건을 둘러싼 사용자의 삶은 찾아볼 수 없는 작업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딕 반 호프]
이런 공허함을 느끼는 와중에 얼마 전 학교에서 이탈리아 디자이너 알베르토 메다(Alberto meda)의 워크숍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공학도 출신의 디자이너로 “시적인 기술자(Poetic Engineering)”로 불리며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지금은 물이 부족한 나라를 위해 태양광선에 의해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물병 개발에 한창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디자인계의 꽃이었지만 지금은 신선할 것 없는 오래된 전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에토르 소사(Ettore sottsass),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 엔조 마리(Enzo Mari) 등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들을 바라보면서 배우는 점은, 그들의 작업 이면에 숨어있는 힘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학까지 아우르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성찰하는 작가로서의 큰 힘을 느낀다.
[에토르 소사]
디자인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친구 하나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우리나라에는 자신의 이론을 갖고 작업하는 디자이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도전해보라고. 어려워도, 시간이 걸려도, 자신의 생각을 키워가며 일상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점점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류지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졸업 IDAS 제품디자인 1학년 휴학,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 Man & Humanity Master 프로그램재학 중